[옛글에서 읽는 오늘]운명 만들기

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역사에서 옳고 선한 것이 반드시 승리하는가? 성호 이익은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라는 글에서 역사의 십중팔구는 도덕성과 무관하다고 보았다. “천하의 일은 시세(時勢)가 최상이고, 행·불행이 다음이요, 옳고·그름은 최하이다.” 그는 역사의 결정요인으로 시세와 우연을 중요하게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헛된 것인가?

성호는 ‘조명(造命)’이라는 글에서 천명(天命), 성명(星命), 조명의 세 가지를 말했다. 성명이란 자연의 상호작용에 따라 생기는 길흉으로, 점술가들이 헤아리는 것인데 믿고 취할 것이 못된다. “천명만을 말한다면 착한 일도 상 줄 것이 없고 악한 일도 벌 줄 것이 없다.” 성호는 조명에 주목했다.

조명이란 본디 ‘임금과 재상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성호는 “조명이란 시세를 만나 인력(人力)이 참여하는 것이다” “임금과 재상만이 운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선비와 서민들도 운명을 만든다. 농사에 힘써 가족을 먹여살리고, 기미를 알아 흉한 일을 피하는 등의 일은 모두 화복(禍福)을 바꾸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사람들의 능동적인 노력에 의해 역사의 진로, 즉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정조는 세상일을 ‘나로 말미암는 것’과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의 두 가지로 분류해 “군자는 나로 말미암는 것을 다한 이후에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유사한 논법이면서도 구체적인 나를 기준으로 해서 훨씬 실천적이다. 문제는 나로 말미암는 영역이다.

분열된 이탈리아의 운명이 바뀌길 바랐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에 관해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운명이란 절반만 주재할 뿐 나머지 절반은 사람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 운명이라는 험난한 강물이 범람해도 미리 제방을 쌓아놓은 사람은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 내 하기에 따라 운명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둘째, 운명은 가변적이다. 유연성을 발휘해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다. 셋째, 운명의 신은 여성이어서 적극적인 젊은 남자를 좋아한다. 즉 신중하기보다 과감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나로 말미암지 않는 영역은 어찌할 수 없다. 우선 나로 말미암는 영역, 즉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유연하면서도 과감한 자세로 자신의 ‘운명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운명에 휩쓸려 갈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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